ROE가 높은데 부채비율도 높다 - 같은 숫자가 두 얼굴을 갖는 이유
수익성은 최상위인데 안정성은 하위인 종목이 있습니다. 지표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ROE라는 숫자 안에 빚이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ROE를 세 조각으로 쪼개서 그 구조를 들여다봅니다.
두 지표가 반대를 가리킬 때
종목을 보다 보면 앞뒤가 안 맞아 보이는 조합을 만납니다. ROE는 업종 최상위인데 부채비율은 하위권인 회사입니다. 수익성 점수는 높고 재무 안정성 점수는 낮게 나오니, 이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흔한 반응은 둘 중 하나가 잘못된 숫자라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숫자 모두 정확합니다. 애초에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을 뿐입니다. ROE는 "주주가 넣은 돈으로 얼마나 벌었나"를 묻고, 부채비율은 "그 과정에서 빚을 얼마나 썼나"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빚을 쓰면 ROE가 올라갑니다. 즉 두 지표가 반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을 앞면과 뒷면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ROE를 세 조각으로 쪼개면 보이는 것
ROE는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입니다. 이 한 덩어리를 세 개의 곱으로 분해하는 오래된 방법이 있습니다. 순이익률, 자산회전율, 재무레버리지 세 가지입니다.
순이익률은 매출 100원에서 얼마가 이익으로 남는지를 봅니다. 자산회전율은 회사가 가진 자산으로 매출을 몇 번이나 돌려냈는지를 봅니다. 재무레버리지는 총자산이 자기자본의 몇 배인지, 다시 말해 남의 돈을 얼마나 얹어서 사업 규모를 키웠는지를 봅니다. 이 셋을 곱하면 ROE가 됩니다.
이 분해가 알려 주는 것은, 같은 ROE 15퍼센트라도 만들어진 경로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진이 두꺼워서 나온 15퍼센트, 자산을 빠르게 돌려서 나온 15퍼센트, 그리고 빚을 많이 얹어서 나온 15퍼센트는 회사의 성격도 위험의 크기도 다릅니다.
숫자 하나로 회사를 비교할 때 놓치는 것이 바로 이 경로입니다. ROE만 보면 셋은 구별되지 않습니다.
빚이 ROE를 밀어올리는 원리
세 조각 중 재무레버리지가 부채비율과 직접 연결됩니다. 자기자본은 그대로 두고 빌린 돈으로 자산을 늘리면 총자산이 커지고, 총자산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재무레버리지도 함께 커집니다. 앞의 두 조각이 그대로여도 곱셈의 마지막 항이 커졌으니 ROE가 올라갑니다.
이것이 곧 나쁜 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빌린 돈의 이자보다 그 돈으로 만든 이익이 크다면 레버리지는 주주 입장에서 남는 장사입니다. 성장기의 회사가 차입으로 설비를 늘려 이익을 키우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 판단입니다.
문제는 방향이 뒤집혔을 때입니다. 레버리지는 이익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손실도 같은 배율로 키웁니다. 매출이 흔들리거나 금리가 오르면, ROE를 밀어올리던 바로 그 구조가 이번에는 적자 폭을 밀어내립니다. 높은 ROE와 높은 부채비율이 함께 있다는 것은 그 회사의 실적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ROE가 높은 회사를 볼 때는 그 높이가 어디서 왔는지를 같이 봐야 합니다.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이 그 확인을 위한 숫자입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몇 번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에, 레버리지가 아직 안전한 범위인지 가늠하는 데 쓰입니다.
주픽이 수익성과 안정성을 따로 채점하는 이유
주픽의 등급은 아홉 개 지표를 세 영역으로 나눠 계산합니다. 수익성 40퍼센트, 재무 안정성 35퍼센트, 배당 25퍼센트입니다. ROE는 수익성에,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은 안정성에 들어갑니다.
영역을 나누는 이유가 바로 이 글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아홉 개 지표를 그냥 평균 내면, 레버리지로 밀어올린 ROE가 그 레버리지 때문에 깎인 안정성 점수를 상쇄해 버립니다. 결과는 무난한 중간 점수 하나이고, 그 회사가 어떤 종류의 회사인지는 사라집니다.
따로 채점하면 그 상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익성 상위, 안정성 하위라는 조합이 화면에 그대로 남고, 보는 사람은 이 회사가 공격적으로 자본을 쓰는 회사라는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종합 등급은 그 위에 얹힌 요약일 뿐입니다.
종목 화면의 등급 카드를 펼치면 각 지표가 100점 만점에 몇 점을 받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등급 안에서도 어디서 점수를 얻고 어디서 잃었는지가 갈립니다.
자기자본이 마이너스가 되면 ROE는 무너진다
레버리지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가면 극단적인 지점이 나옵니다. 자사주를 오랫동안 대규모로 사들이면 회계상 자기자본이 줄어들고, 누적되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합니다. 이익을 꾸준히 내는 대형 기업 중에도 이런 회사가 있습니다.
자기자본이 음수가 되면 ROE는 계산은 되지만 의미가 사라집니다. 이익을 내는데도 값이 음수로 나오고, 자본이 0에 가까워질수록 값이 무한대에 가깝게 튀어 오릅니다. 그래서 많은 데이터 제공처가 이 경우 ROE 값을 아예 내려 주지 않습니다.
주픽은 이런 빈칸을 0으로 채우지 않고 중립값으로 처리한 뒤, 화면에 하이픈과 사유를 함께 표시합니다. 0으로 채웠다면 이익을 잘 내는 회사가 수익성 최하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처리 방식은 별도의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이 사례가 말해 주는 것은, 지표가 성립하는 범위 밖으로 회사가 나가 버리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는 점입니다. 숫자를 볼 때는 그 숫자가 유효한 범위 안에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이 숫자를 믿으면 안 되는 자리
ROE는 회계상의 자기자본을 분모로 씁니다. 그런데 자기자본은 회사가 언제 무엇을 얼마에 샀는지, 자사주를 얼마나 사들였는지, 회계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업의 실력과 무관한 이유로 분모가 움직이면 ROE도 따라 움직입니다.
업종 간 비교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산이 적게 드는 업종은 구조적으로 ROE가 높게 나오고,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업종은 낮게 나옵니다. 서로 다른 업종의 ROE를 나란히 놓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대체로 업종의 성격을 순위로 매기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ROE는 과거 실적을 요약한 값입니다. 이미 지나간 기간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약속이 아닙니다. 레버리지가 실린 ROE일수록 이 점이 중요합니다. 조건이 바뀌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흔들리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본 내용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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