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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움직이면 회사는 그대로인데 숫자가 달라진다

해외 회사의 시가총액을 원화로 보면 회사에 아무 일이 없어도 숫자가 매일 달라집니다. 반면 PER과 부채비율은 어느 통화로 계산해도 같은 값이 나옵니다. 환율이 흔들 수 있는 숫자와 흔들 수 없는 숫자를 가르는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회사에 아무 일도 없었던 날

해외 회사의 정보를 원화로 보여 주는 화면을 이틀 연속 열어 보면 시가총액이 달라져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 회사는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고 현지 주가도 거의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환율뿐입니다.

이 일은 대체로 조용히 일어납니다. 화면 어디에도 이 숫자는 환율로 옮겨 온 값이라는 안내가 없습니다. 세계 거래소들이 함께 만드는 국제 통계에서도 시가총액을 달러로 볼지 현지 통화로 볼지 고를 수 있지만, 고르는 자리 어디에도 그 선택이 숫자를 얼마나 바꾸는지에 대한 설명은 붙어 있지 않습니다.

환율이 개입한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옮겨 적은 숫자는 원래부터 그 통화로 태어난 숫자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환율이 만든 변화를 회사가 만든 변화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다행히 규칙은 단순합니다. 환율은 어떤 숫자는 흔들 수 있고 어떤 숫자는 아예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 알면 대부분의 혼란이 정리됩니다.

나누기로 만든 지표는 환율을 지웁니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주가도 그 나라 통화이고 주당순이익도 같은 나라 통화입니다. 이 둘을 원화로 옮기려면 위쪽에도 환율을 곱하고 아래쪽에도 같은 환율을 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는 순간 위아래의 환율이 서로 지워집니다.

그래서 어떤 미국 회사의 PER이 달러 기준으로 20배라면 원화로 계산해도 20배입니다. 환율이 얼마이든 상관이 없고, 환율이 하루 사이에 크게 움직여도 PER은 그 때문에 바뀌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가 PBR, 자기자본이익률, 부채비율, 영업이익률, 배당성향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위와 아래가 같은 통화로 태어난 값이라면 통화는 계산 과정에서 사라집니다. 비율 지표가 국경을 넘어도 비교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픽의 등급이 쓰는 아홉 개 지표를 세어 보면 이 성질이 더 분명해집니다. 자기자본이익률, 영업이익률, 매출성장률, 부채비율, 유동비율, 이자보상배율, 배당수익률, 배당성향은 모두 비율이고, 나머지 하나인 연속 배당 연수는 햇수입니다. 통화 단위를 가진 값은 아홉 개 중 하나도 없습니다. 등급을 만들 때 환율이 끼어들 자리가 애초에 없다는 뜻입니다.

크기를 말하는 숫자는 환율을 그대로 안고 갑니다

문제는 나누지 않는 숫자들입니다. 시가총액, 매출액, 순이익, 주당순이익, 주가 자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값들에는 통화가 한 번만 붙어 있어서 서로 지워질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화로 옮기면 환율이 그대로 남습니다. 원화가 달러 대비 10% 약해지면 미국 회사의 원화 환산 시가총액은 그 회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10% 커집니다. 반대 방향이면 반대로 작아집니다.

규모로 줄을 세우는 표는 전부 이 영향을 받습니다. 세계 시가총액 순위를 달러로 만들면 달러가 강해진 해에 미국 밖 회사들이 일제히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 회사들이 그해에 사업을 못한 것이 아니라 표를 만든 자가 달라진 것입니다.

주픽이 다루는 국내 종목은 이 문제에서 비켜 서 있습니다. 주가도 원화이고 재무제표도 원화라 옮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시가총액은 환산된 값이 아니라 원래 원화로 태어난 값입니다.

같은 해에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 지수

이 차이가 부호까지 뒤집은 사례가 있습니다. 세계 주요 시장을 담는 대표적인 글로벌 지수의 2015년 연간 성과는 각국 현지 통화 기준으로는 플러스였지만 달러 환산 기준으로는 마이너스였습니다. 같은 지수, 같은 해, 같은 구성 종목인데 표시 통화만 다릅니다.

어느 쪽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해 세계 증시가 올랐느냐는 질문에 답이 두 개 있는 것입니다. 각 나라 사람이 자기 돈으로 겪은 성과와, 달러를 들고 그 시장에 들어갔던 사람이 겪은 성과가 달랐을 뿐입니다.

해외 자산을 기록하는 일부 포트폴리오 도구는 아예 성과를 쪼갤 때 환율 때문에 생긴 부분을 따로 떼어 별도 항목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항목들을 더해도 전체 값과 정확히 맞지는 않는다고 미리 밝혀 둡니다. 가격 변화와 환율 변화는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기간을 두고 보는 숫자일수록 환율이 더 크게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한 시점의 값에는 환율이 한 번 곱해지지만, 기간 수익률이나 증가율에는 시작 시점의 환율과 끝 시점의 환율이 각각 걸립니다.

환율은 언제 찍은 값을 쓰는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환율은 하루 종일 움직입니다. 그러니 옮겨 적으려면 어느 순간의 환율을 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이 결정을 안 하고 넘어가면 같은 표를 두 사람이 만들었을 때 값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지수를 만드는 회사들은 시각을 못 박아 둡니다. 런던 시간 오후 4시처럼 하나의 기준 시각을 정하고 그 시각의 환율만 씁니다. 통화끼리 직접 바꾸지도 않습니다. 원화를 유로로 바꿔야 하면 원화에서 달러로, 달러에서 유로로 두 번 거칩니다. 경로를 고정해야 계산하는 사람이 달라도 같은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환전 서비스가 화면에 띄우는 중간 환율에도 정의가 있습니다. 사려는 값과 팔려는 값의 한가운데라는 뜻이고, 실제로 그 값에 환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준선으로 쓰기 좋은 값일 뿐입니다.

결국 환산된 숫자에는 언제, 어떤 정의의 환율로 옮겼는지가 항상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화면에서 그 꼬리표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비율인데도 환율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서 나누기를 하면 환율이 지워진다고 했지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위와 아래가 같은 통화로 태어난 값이어야 합니다. 한쪽만 옮겨 온 값이면 환율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주픽의 김치 프리미엄이 정확히 그런 경우입니다. 김프는 국내 거래소의 원화 가격을 해외 시세의 원화 환산값으로 나눈 값입니다. 위쪽은 처음부터 원화로 거래된 진짜 원화 가격이고, 아래쪽은 달러 가격에 환율을 곱해 만든 값입니다. 태생이 다르니 나누어도 환율이 한 번 남습니다.

그래서 코인 수급이 완전히 그대로여도 원달러 환율이 움직이면 김프 수치가 움직입니다. 김프의 변화를 전부 국내 투자 심리 탓으로 돌리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주픽이 보여 주는 코인 시가총액에도 같은 성질이 있습니다. 글로벌 시세를 원화 기준으로 받아 오기 때문에, 코인의 달러 가격이 그대로여도 환율이 움직이면 원화 시가총액이 움직입니다. 코인 등급을 매길 때 쓰는 잣대는 주식과 다르지만, 화면에 찍힌 원화 시가총액이 환율을 안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옮겨 온 숫자를 만나면 물어볼 세 가지

첫째, 이 숫자는 원래 어느 통화로 태어났는가입니다. 원래부터 그 통화인 값과 옮겨 온 값은 성질이 다릅니다. 옮겨 온 값에는 회사와 무관한 움직임이 섞여 있습니다.

둘째, 옮겼다면 언제의 환율로 옮겼는가입니다. 같은 날 안에서도 환율은 움직이고, 기간을 다루는 숫자라면 시작과 끝에 서로 다른 환율이 걸립니다.

셋째, 비교하려는 두 숫자가 같은 방식으로 옮겨졌는가입니다. 한쪽은 기말 환율로, 다른 쪽은 평균 환율로 옮긴 값을 나란히 두면 그 차이는 회사의 차이가 아닙니다.

간단한 요령을 남겨 두면 이렇습니다. 비율이면 대체로 안심하고 봐도 되고, 크기를 말하는 숫자이면 통화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비율이라도 위아래의 출신 통화가 다르면 예외라는 것을 기억하면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국내 회사라고 환율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수출 비중이 큰 회사는 환율이 실제 실적을 바꿉니다. 다만 그것은 숫자를 옮기다가 생긴 변화가 아니라 회사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재무제표 안에서 다르게 다뤄집니다. 그 이야기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룹니다.

본 내용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 주픽은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고 환율이나 주가의 미래 방향을 예측하지 않습니다. 투자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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